
루쥬 느와르
글 : Kassia St Clair
사진 촬영: Charles Negre

서기 1세기 중반, 로마의 역사가 플리니우스(Pliny the Elder)는 특별한 힘을 지닌 색에 대한 글을 썼다. 그는 “이 색은 원로원 의원들을 하급 계층과 구분한다. 이 색을 걸친 이들을 통해 신에게 바치는 기도가 전해지며, 어떤 옷에 더해져도 광채를 드리운다”라고 적었다. 흔히 티리안 퍼플로 불리던 이 색은, 그가 묘사하기로는 “응고된 피의 색, 얼핏 보면 검게 보이지만 빛에 비추면 광채를 드러내는 색”이었다. 다시 말해, 루쥬 느와르를 꼭 닮은 색이었다.
이처럼 닮은 두 색조가 전설의 소재가 된 건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티리언 퍼플은 고대 세계를 대표하는 특별한 염료였고, 다른 하나는 메이크업 역사에 남을 상징적인 컬러이다. 1994년 3월 8일 밤늦게,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가 샤넬 1994/95 가을-겨울 레디-투-웨어 컬렉션을 선보이기 이틀 전, 아직 결정되지 않은 작은 디테일이 하나 남아 있었다. 바로 모델들의 네일 컬러였다. 당시 샤넬 메이크업 스튜디오를 총괄하던 도미니끄 몽끄뚜와(Dominique Moncourtois)와 아이디 모라베츠(Heidi Morawetz)는 대담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여러 안료를 섞기 시작했다. 그들이 찾던 것은 레드와 블랙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바니시였다. 그리고 모두가 알고 있듯, 그 결과는 루쥬 느와르였다. 샤넬 글로벌 향수 및 뷰티 크리에이티브 리소스 디렉터인 또마 뒤 프레 드 생 모르(Thomas du Pré de Saint Maur)에게 이 컬러는 반항적인 밤의 실험성과 창작의 자유가 깃들어 있다고 말한다. “미리 계획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 역사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즉흥적이었으니까.”
실제로 런웨이에 등장한 순간, 이 컬러는 곧바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런지와 브릿팝, 팝 펑크, 너바나와 엑스 파일(The X-Files)이 시대를 물들이던 때였다. 루쥬 누아르는 그 순간을 정확히 포착했다. 당시에도 지금처럼 샤넬은 세련됨과 우아함의 대명사였고, 짙고 고딕적이며 치명적인 이 컬러의 등장은 묘한 전율을 불러일으켰다. 샤넬의 클래식 컬러인 레드와 블랙을 섞어 탄생한 이 색은 아방가르드하면서도 시크했고 스타일리시하면서도 펑크록적인 결을 품고 있었다. 출시 직후 유럽과 미국 전역에서 빠르게 품절되었고, 미국에서는 뱀프(Vamp)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다. 1994년 영화 펄프 픽션(Pulp Fiction)에서 미아 월러스(Mia Wallace) 캐릭터의 네일 컬러가 루쥬 느와르였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오늘날 루쥬 느와르는 샤넬을 상징하는 하나의 기준점이자, 하우스의 유산을 이루는 클래식 컬러로 자리했지만, 처음 등장했을 당시에는 사람들을 놀라게 할 힘을 지니고 있었다. 당시 한 평론가는 훗날 루쥬 느아르를 두고 “터무니없을 만큼 거대한 글로벌 현상이 되었다. 그만큼 대담한 색이었다”고 회상했다.
대담함과 정제된 우아함을 동시에 지닌 이 컬러의 복합적인 성격은 가브리엘 샤넬 자신도 이미 알아보고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깊이 있는 레드에 끌렸다. 1963년 엘르(Elle)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레드를 두고 “삶의 색, 피의 색”이라고 말했다. 2천 년 전 플리니우스의 표현을 기묘할 만큼 떠올리게 하는 말이었다. 파리의 깜봉가 31번지에 위치했던 그녀의 아파트는 짙은 크림슨 컬러의 코로망델 병풍이 놓여 있었다. 스케치와 일러스트, 사진 속 그녀 또한 이 색을 즐겨 입고 있었고, 1926년 미국 보그(Vogue) 매거진은 “블랙과 화이트 다음으로” 가브리엘 샤넬이 가장 사랑하는 컬러가 짙은 레드라고 전했다. “블랙 체리 속살을 닮은 가넷 컬러, 흔히 블랙 레드라 불리는 색.” 시대를 막론하고, 강렬하고 힘 있는 색은 늘 강렬하고 힘 있는 사람들을 매혹해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