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콜 미 바이 마이 네임
글 : FUNMI FETTO
사진 촬영: Charles Negre

샤넬의 첫 번째 레드 립스틱은 1924년 파리에서 탄생했다. 이후 수백 가지의 색조와 광택, 텍스처를 달리하며 이어졌고, 레드는 샤넬 하우스를 상징하는 컬러로 자리했다. 립스틱 이름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작가이자 뷰티 에디터 펀미 페토 (Funmi Fetto) 가 그 이야기를 풀어낸다.
가브리엘 샤넬과 함께 일했던 한 모델이 전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마드모아젤이 깡봉가에 도착하면 모델들은 그녀를 기쁘게 하기 위해 서둘러 레드 립스틱을 발랐다고 해요.” 샤넬 메이크업 크리에이션 스튜디오의 디렉터인 나탈리 라스넷(Nathalie Lasnet)는 이렇게 전했다. 가브리엘 샤넬에게 레드는 결코 가벼운 장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신념에 가까운 색이었다. “레드는 그녀에게 상징적인 의미를 지녔다. 힘과 유혹뿐 아니라 삶, 열정, 정념과도 이어진 색이었다. 그녀는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 ‘레드는 삶의 색, 피의 색이다. 나는 레드를 사랑한다.’ 욕망과 순수함, 작렬하는 기세와 온화함, 열정과 이성 사이의 이중성과 양면성. 바로 그것이 그녀에게 레드를 그토록 매혹적인 색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레드는 샤넬의 역사에 깊이 뿌리내리게 됐다.
그래서 샤넬에서 레드 립스틱의 이름을 짓는 일은 트위드 수트를 재단하는 일만큼이나 정교하게 다뤄진다. “예술 작품의 제목이 상징성과 창조적 의미를 부여하듯, 쉐이드의 이름 역시 창작 과정에서 결정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이름은 컬러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라스네는 이렇게 설명했다. “때로는 그 이름이 모든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
샤넬에서 레드의 이름을 짓는 일은 시적이면서도 치밀하다. 한 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500가지가 넘는 레드가 탄생했지만, 각각의 이름은 지문처럼 고유한 정체성을 지닌다. 2001년 출시되었던 현란하고 반항적인 피라트 레드(Pirate Red)는 자신감과 장난기를 표현했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난 뒤 샤넬이 31 르 루쥬 라인을 공개했을 때, 그것은 단순히 새로운 립스틱의 출시가 아니었다. 패션의 정신을 담아내는 일이었다. 31 깡봉가의 거울 계단에서 영감을 받은 패싯 글라스 케이스에 담긴 12가지 리필형 쉐이드로 첫선을 보인 이 컬렉션에서, 가넷 레드 컬러의 루쥬 2.55는 가브리엘 샤넬의 아이코닉한 핸드백 안감을 떠올리게 했고, 루쥬 페디쉬(Rouge Fétiche)는 그녀가 간직했던 부적 같은 의식을 기렸다.
각 쉐이드는 유산과 지속 가능성을 함께 담아냈다. 리필이 가능하고, 소장할 가치가 있으며, 하나의 상징처럼 남는 컬러들. 한편 2016년 출시된 샤넬의 베스트셀러이자 생동적인 컬러의 루쥬 뷔(Rouge Vie)는 “삶과 생명력이라는 개념을 표현하는 동시에 자연스럽고 진정성 있으며 즉흥적인 페미니스트의 이미지를 구현하는 컬러”라고 라스넷은 설명한다. 같은 해 등장한 루쥬 알뤼르잉크(Rouge Allure Ink)는 시간을 초월한 감각을 추구하는 세대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걸었다. 그 이름만으로도 관능과 지속성, 그리고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컬러의 명명법을 샤넬만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하우스는 드물다. 샤넬에게 레드는 단순한 팔레트가 아니라 문화적 코드의 어휘집이다. 각각의 쉐이드는 짧은 이야기처럼 이름 붙여지고, 각각의 이름은 저마다의 신화를 품는다. 샤넬은 아름다움의 세계에서, 그리고 패션에서, 이름 짓는 일이 곧 힘이라는 사실을 언제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컬러가 레드일 때, 그 힘은 더욱 깊어진다.
샤넬 글로벌 향수 및 뷰티 크리에이티브 리소스 디렉터인 또마 뒤 프레 드 생 모르(Thomas du Pré de Saint Maur)는 왜 레드가 그토록 샤넬다운 컬러인지 늘 생각하게 된다고 말한다. “레드는 단순한 코드가 아니라 하나의 아이디어, 비전, 신념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색이다.” 그에게 레드 컬러는 가장 원초적인 감정과 뗄 수 없는 색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가브리엘 샤넬이 모든 것을 사랑 때문에 했다고 생각한다. 사랑 없는 삶은 모든 것을 잃는 것과 같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으니까. 사랑이라는 감정은 모든 것이 확장되는 순간이다. 세상과 꿈, 힘과 회복력, 대담함이 끝없이 확장되며 더는 불가능한 것이 없어지는 순간이다. 그녀가 바로 그런 이유로 레드를 선택했다고 믿는다. 이 색이야말로 감정이 강해지고 깊어지고 커져 가는 그 순간을 가장 잘 보여주니까. 그래서 나는 늘 이렇게 말한다. 샤넬에는 작은 레드 같은 건 없다고. 언제나 크고, 위대하고, 대담한 레드만이 있다.” 가브리엘 샤넬에게 레드는 성격의 서명이었다. 한 여성은 과장된 장식이 아니라 정교한 선택으로 방 안에 들어설 수 있었다. 블랙 드레스, 진주 목걸이, N°5의 향, 그리고 레드 립. 그러니 이름 짓기는 결코 장식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의도의 문제였다.
샤넬의 첫 립스틱은 1924년에 출시되었다. 그 색조는 그녀의 아파트를 장식하던 코로망델 병풍의 색에서 영감을 받았다. 세기 중반에 이르러 샤넬 립스틱 컬러의 이름은 화려함과 라이프스타일을 상징하는 루쥬 플램보이앙트(Rouge Flamboyant), 루쥬 인칸데쌍(Rouge Incandescent)등의 이름으로 출시되었다. “1960년대에는 동양과 인도, 터키 등 도시의 이름을 사용해서 이름이 글로벌해졌죠. 그리고 80년대와 90년대에는 다양한 색조가 메이크업 컬렉션 테마를 따랐고 이렇게 립스틱 이름은 시대에 따라 변했습니다,”라고 샤넬에서 출시한 립스틱 대부분을 소장하는 하우스 아카이브, 샤넬 헤리티지의 프래그런스 앤 뷰티 컬렉션 큐레이터 줄리 디디에(Julie Deydier)의 설명이다.
1960년대의 샤넬 립스틱은 12가지 쉐이드로 구성되어 있었고, 그 이름들에는 시대의 상상력이 담겨있었다. 재키 케네디의 여행을 떠올리게 하는 봄베이(Bombay)같은 이름도 있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며 샤넬은 피보앙(Pivoine), 프루넬(Prunelle), 푸(Feu) 같은 컬러로 더 풍부한 팔레트를 소개했다. 1980년대에는 슈퍼모델 시대의 세련된 분위기를 반영한 오로르(Aurore) 같은 쿨톤의 레드 컬러인 “블루 시대”가 도래했고, 1990년대에는 뷰티 역사를 재창조한 컬러인 루쥬 느와르(Rouge Noir)의 파괴적인 뱀파이어 레드 블랙이 등장했다. 2000년대에는 채도를 낮춘 톤이 주를 이뤘고, 2010년대 이후에는 코코처럼 높은 채도의 레드와 함께 다시 빛이 돌아왔다. 이러한 변화는 2015년부터 2020년까지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메이크업 앤 컬러 디자이너를 맡았던 루시아 피카(Lucia Pica)의 시기에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 시기에 그녀는 루쥬 비를 선보였다. “이 시기의 레드는 강렬하면서도 섬세했다.” 라스넷은 말했다. “바로 이때 새로운 쉐이드 패밀리인 ‘부아 드 루쥬’, 레드우드 계열을 선보였다. 반대로 1969년부터 2007년까지 인터내셔널 메이크업 크리에이션 디렉터였던 도미니크 몽쿠르투아의 시대, 특히 1990년대의 샤넬 레드는 훨씬 더 강하고 선명했다. 정복의 컬러로서 레드를 바라본 비전이 반영된 것이었다.”
2026년 졸업반, 샤넬 립스틱 138가지

레드 립스틱은 오랫동안 문화적 시대성을 드러내는 표식이었다. 혁명과 힘, 혹은 저항을 상징하는 신호였다. 1910년대에는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이 뉴욕과 런던 거리에서 행진하며 진홍빛 립을 발랐다. 1920년대의 플래퍼들은 레드를 성적 해방의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클라라 보우(Clara Bow) 같은 무성 영화 스타들은 빨간 입술을 매력적인 여성과 동의어로 만들었고, 1930년대와 1940년대의 스크린 우상이었던 마를레네 디트리히(Marlene Dietrich)와 그레타 가르보(Greta Garbo)는 레드 립스틱을 시네마 유혹의 언어로 전환했다. 2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할리우드와 선전이 맞물리며, 여성들은 사기를 북돋우는 애국적 상징으로 밝은 레드 립을 권유 받기도 했다. 어떤 페미니스트들은 이를 가부장적 통제의 상징으로 보며 거부했지만, 1970년대 후반이 되자 레드 립은 펑크와 퀴어 커뮤니티에 의해 저항의 상징으로 다시 받아들여졌다. 레드는 반항과 성적 자율성을 나타내는 표지가 됐다. 1980년대의 과잉 시대는 레드 립스틱을 기업적 갑옷으로 끌어올렸고, 1990년대에는 반대로 반글래머 미학의 일부가 됐다. 날것 그대로의 대담함과 여성의 분노를 드러내는 상징이 된 것이다. 가브리엘 샤넬이 “립스틱을 바르고 공격하라”고 말한 것도 그래서였다. 2010년대에 이르러 레드 립은 로맨스와 상실, 밀레니얼 여성성을 상징하는 약호가 됐다. 힘과 유희를 동시에 품은 기호였다. 이 모든 변화는 샤넬이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을 다시 보여준다. 립스틱은 당신보다 먼저 말을 건넨다는 것.
시간이 흐르며 레드는 문화마다 다른 의미를 지녀 왔다. 베이징에서는 번영을, 라고스에서는 영적인 생명력을, 파리에서는 열정을, 뉴욕에서는 힘을 뜻한다. 하지만 뒤 프레 드 생 모르는 이를 보다 보편적인 언어로 설명한다. “우리는 프랑스 브랜드이고, 문화마다 레드가 의미하는 바는 다르다. 하지만 동시에 보편적인 것도 있다. 예를 들어 ‘로미오와 줄리엣’은 어떤 맥락에서도 통한다. 중요한 것은 감정을 어떻게 전달하고, 사람들이 그 감정과 어떻게 연결되느냐다. 그것이 우리의 자산이다. 우리는 프랑스적인 스타일과 알뤼르 안에서 보편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바로 그 점이 아름답다. 샤넬의 레드는 다양성을 지니면서도 동시에 공통성을 지닌다. 좋든 싫든, 레드는 피의 색이니까. 그리고 그 피는 세상 모든 사람 안에 흐르고 있다.” 혹은 샤넬 자신의 말로 바꾸면 이렇다. “레드는 피의 색이다. 우리 안에 그토록 많이 흐르고 있으니, 조금은 밖으로 드러내야 한다.” (Chanel solitaire, Claude Delay, 1983, 파리 Gallimard)
심리적으로도 레드는 자신감과 권위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는 색이다. 가브리엘 샤넬 역시 레드를 하나의 부적처럼 대했다. 컬렉션을 발표하기 전, 그녀는 경마장의 풍습에서 영감을 받아 발목에 레드 리본을 묶곤 했다. 이러한 의식은 행운과 마법적 보호를 상징하는 참에 대한 찬사로 이름 붙여진 쉐이드 루쥬 페디쉬에도 이어진다. “흥미로운 것은, 레드가 지닌 이런 신비로운 차원이 오늘날과도 깊이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위안을 넘어, 행운과 마법, 점술과 신비의 세계가 줄 수 있는 경이로움과 매혹을 찾고 있으니까.” 라스넷이 설명한다.
디디에는 과거를 기리면서도 새로운 세대와 대화를 이어가려는 샤넬의 태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샤넬에서 우리는 역사와 유산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과거를 알아야 미래를 더 잘 창조할 수 있으니까.” 라스넷 역시 같은 생각이다. “우리는 언제나 브랜드의 유산과 연결되어 있고, 과거의 새로운 일화와 크리에이션을 계속해서 발견한다. 그리고 그것을 현재와 대화하게 만들며, 다시 미래를 향한 대화 속으로 확장해 나간다. 스튜디오에서 우리는 유산의 수호자이자 비전의 수호자다.”
이러한 야망이 가장 순도 높게 드러나는 곳은 하우스의 가장 오래된 코드 가운데 하나인 레드다. 샤넬에서 모든 레드는 하나의 이름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루쥬 뷔, 루쥬 느와르, 피라트, 가브리엘, 코코. 각각의 이름은 저마다의 신화를 품고 있다. 이름은 하나의 컬러를 이야기로 바꾸고, 립스틱을 아이디어로 바꾸며, 컬렉션을 여성성의 언어로 확장한다.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정의하는 일이자, 꿈꾸는 일이자, 대담해지는 일이다. 한 여성이 자신만의 샤넬 레드를 선택하는 순간, 그것은 하나의 주체적인 선택이 된다. 자율성과 대담함의 선언이 되는 것이다. 그녀는 단지 하나의 쉐이드를 고르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