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Kassia St Clair

Ignaz Schiffermüller, Versuch eines Farbensystems (색채 체계에 관한 고찰), 1772
Ignaz Schiffermüller, Versuch eines Farbensystems (Attempt at a Colour System), 1772

세기가 바뀌며, 색을 지적, 정서적, 문화적으로 경험하는 방식은 크게 달라졌다. 역사가이자 작가인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 Kassia St Clair ) 는 문명을 거슬러 올라가 아직 알 수 없는 미래까지 시선을 확장하며, 색이 지닌 과학과 마법을 탐구한다.

2024년 말 예술 작품을 보고 발걸음이 갑자기 멈춘 적이 있다. 평범한 제목의 JK2116E 작품은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예술 & 디자인 박람회에 전시 중이었는데, 변형된 도공의 물레를 사용해 두루마리 종이를 촘촘하게 감아 직사각형으로 압축한 후 사각형 모양으로 배열된 작품이었다. 도쿄 미술학교를 졸업한 후 지금은 메릴랜드에 거주하는 한국인 작가 고재는 1990년대부터 유사한 작품을 선보여 왔다. 대개 재활용 종이로 만들어지는 그의 작품은 나이테와 굴 껍데기, 씨앗 꼬투리를 떠올리게 하는 유기적인 나선 형태를 이루며, 작가는 이를 물이나 수묵에 담갔다가 몇 주, 혹은 몇 달에 걸쳐 천천히 말린다. 고 작가의 작품 대부분이 흥미롭지만 내가 JK2116E 작품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이유는 작품이 주는 생동감 때문이었다. 작품 전체가 광택이 없는 깊은 라피스 블루 컬러로 휩싸여 극단적으로 강렬한 분위기를 냈다. 색에 집착하는 역사학자이자 작가인 나는 지적, 정서적, 문화적으로 색을 이해하는 방법이 어떻게 진화하는지 고민하며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이런 나에게 이 작품은 깊은 인상을 남겼고, 그 이후로도 그 작품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다.

나에게 라피스 블루 컬러에 대한 생각이 이토록 떠나지 않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세기가 바뀌면서 우리가 색을 경험하고 “이해”하는 방식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가 사용하는 장치와 장식, 뷰티, 예술, 문화는 물론 자연을 통해 더 선명한 색상에 노출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색에 노출되면서 우리는 통찰력을 갖게 되고 더 능숙한 색채 감정가가 되어 색의 심리적, 정서적인 영향에 대해 탐구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샤넬 글로벌 향수 및 뷰티 크리에이티브 리소스 디렉터인 또마 뒤 프레 드 생 모르(Thomas du Pré de Saint Maur)가 표현했듯이 우리의 일상은 색채로 지나치게 포화되어 “창의성이 오염”되는 위험에 처해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는 이런 위험 때문에 인간 사회의 기본이 되는 공통적인 내러티브 또는 공통적인 기억을 만들어 내는 일이 더 어려워진다고 강조한다.

가장 빛나는 색을 향한 접근

인류 역사의 대부분 동안 색, 특히 선명한 색은 비단이나 금처럼 희귀하고 엄격히 통제되는 사치품에 가까웠다. 우리 조상들에게 가장 익숙했던 색은 자연의 색으로 머리 위의 하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식물과 나무, 땅에서 찾을 수 있거나 간단히 만들 수 있는 소수의 염료나 색소였다. 불씨의 검은 색, 초크의 흰색, 산화철이 풍부한 토지의 빨간색과 갈색 등 인간이 늘 생동감 있는 색을 좋아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에게 알려진 가장 초기의 인공 섬유는 약 34,000년 전 아마로 만들어졌으며 청록색, 갈색, 검은색, 노란색, 심지어 분홍색과 같은 다양한 색상으로 염색되어 사용되었다. 그 당시 사람들은 황토나 진사 같은 빨간색 안료의 원재료를 거래해 동굴 벽에 바르거나 다양한 선사 시대 공동체의 매장지에 뿌렸다. 1980년 한 인류학자는 오커의 사용을 두고 인간 진화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두 가지 의미 있는 규칙성” 중 하나라고까지 말했다. 다른 하나는 도구 제작이었다.

인간은 자신과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을 꾸미기 위해, 더 새롭고 더 밝은 색에 닿고자 끊임없이 애써 왔다. 페니키아인과 로마인들은 티리안 또는 임페리얼 퍼플로 알려진 선명한 적보라색 염료를 추출하기 위해 지중해를 따라 바다 달팽이를 노획했다.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선인장에서 닥틸로피우스 구균 (또는 연지벌레)를 채취해 선명한 붉은 색소를 만들었다. 희귀한 색은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중국 대륙에서는 철 성분을 기반으로 한 납 유약으로 완성한 달걀노른자처럼 밝은 옐로우 자기 기와가 명나라 시기 황실 건축의 지붕에만 허락되었다. 고대 이집트인과 메소포타미아인은 비리디언빛 말라카이트, 짙은 회색의 방연석, 붉은 오커 같은 광물로 아이섀도를 만들었다. 중국의 상류층은 기원전 3000년경부터 꽃을 색소로 사용해 네일 폴리시를 바르기 시작했고, 기원전 600년경에는 금색과 은색 폴리시의 사용을 왕족에게만 허용하고, 하위 통치자에게는 블랙 또는 레드만 허락하며, 그 밖의 사람들에게는 사용을 금하는 법까지 제정되었다. 중국 대륙에서 이상적인 입술 모양은 시대에 따라 달라졌지만, 대체로 본래의 입술보다 훨씬 작게 여겨졌다. 그 때문에 얼굴에는 화이트 파우더를 바르고, 입술의 일부는 감춘 채 남은 부분만 진사 광물에서 얻은 불투명한 주홍 안료로 다시 그려 넣곤 했다.

새로운 색을 만드는 기술이나 원재료가 발견되면 그 가치가 올랐고 무역이 확장되면서 수백 마일 떨어진 곳에까지 등장했다. 색이라는 상품은 긴장과 갈등을 유발하는 요인이 되어 생산자들은 광산, 농작물, 기술 지식에 접근하기 위해 다투었고, 사용자들은 최고의 품질을 원했다. 예를 들어, 바로크 시대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는 최고의 파란색을 얻기 위해 파산과 모욕을 감수했다. 젠틸레스키는 1960년 금보다 비쌌던 군청색 1½온스를 얻기 위해 토스카나 대공과 대출 계약을 체결했지만, 제때 빚을 갚지 못해 가정용품과 가구를 압류당했던 적이 있다.

오늘날 색의 풍경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아이작 뉴턴 경과 요한 볼프강 폰 괴테를 비롯한 위대한 사상가들의 연구를 통해, 색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비약적으로 확장되었다.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교를 마칠 무렵이면 원색과 보색, 색상환, 무지개를 이루는 색들 같은 개념에 익숙하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은 당시 예술과 인간의 감각에 대한 이해를 혁신적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기도 했다. 19세기 중반, 예술가와 염색가, 화장품 제조자의 팔레트를 넓혀 준 화학의 발전과 20세기 들어 점점 더 다양해진 합성 섬유의 등장 덕분에, 의복과 가구는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색으로, 대량으로, 빠르게 생산될 수 있게 되었다.

수없이 많은 색조의 페인트는 편리한 캔과 튜브에 담겨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고, 철물점 천장 가까이까지 쌓여 갔다. 화장품은 거의 모든 가격대와 쉐이드로 만나볼 수 있으며, 패키지 또한 거의 모든 취향을 아우른다. 1960년대 소비 붐 이후, 색은 도시의 삶을 이루는 자극적이고도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우리는 광고와 네온사인, 디지털 스크린, 매거진, 만화, 그리고 윤기 나는 풀 컬러 이미지로 가득한 책들에 끊임없이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이미지는 다시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만들어낸다. 많은 이들이 매일 아침 자신의 얼굴을 하나의 캔버스처럼 상상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여러 색조와 텍스처, 팔레트를 활용하는 그 방식은 때로는 유희 같고, 때로는 거의 의식에 가깝다.

색의 범위가 확장되면서 색을 분류해 기록하는 방법도 함께 발전해야 했다. 이를 분류하고 체계화하는 방식 또한 그에 발맞춰 변화해 왔다. 그 초기 시도 가운데 하나는 1692년 네덜란드의 화가 A. 부허르트(A Boogert)가 만든 것으로 약 800개의 핸드페인팅 색상 견본을 담은 책이었다. 오늘날에는 색상 매칭과 분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여러 기업이 존재한다. 팬톤만 해도 디지털 플랫폼에 1만 5천 개가 넘는 쉐이드와 틴트, 색조를 보유하고 있다. 이처럼 무수한 선택지가 주어지면서, 선별된 팔레트를 구성하는 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 되었다. 샤넬에는 하우스의 DNA를 이루는 다섯 가지 핵심 컬러가 있다. 블랙, 화이트, 베이지, 골드, 레드. 하우스는 이 색으로 끊임없이 돌아오며, 각각의 색은 더 깊은 메시지를 품는다. 이를테면 20세기 초 하인과 상복을 연상시키던 블랙을 시크하고 욕망의 색으로 다시 읽어낸 일은 가브리엘 샤넬의 대담하고도 급진적인 제안이었다. 이러한 정신은 오늘날 하우스에서 일하는 이들에게도 이어진다. 샤넬 메이크업 크리에이션 스튜디오의 부사장 나탈리 라스네는 이렇게 말한다. “레드와 핑크, 베이지 같은 컬러를 끊임없이 새롭게 선보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오늘 유행하는 레드가 내일의 시대정신과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샤넬은 그 순간의 무드와, 그것을 입는 여성의 욕망에 어울리는 새로운 쉐이드와 팔레트를 제안하고자 한다.”

마음의 작동 방식

인간은 본질적으로 시각적인 존재다. 인간의 뇌 가운데 약 30퍼센트에서 50퍼센트가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데 사용된다고 여겨진다. 게다가 이 과정은 놀라울 만큼 빠르게 이루어진다. MIT의 신경과학자들에 따르면, 하나의 이미지를 인식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3밀리초에 불과하다. 밝고 네온 같은 색조, 높은 대비의 이미지, 예상 밖의 조합, 색으로 가득 채운 화면, 그리고 낯설고 기묘한 감각을 불러일으키며 다시 한 번 바라보게 만드는 AI 이미지까지,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시선을 붙잡기 위해 작동한다. 스와이프하고, 구독하고, 구매하라는 호출이 끊이지 않는 시대에 색은 불꽃이고, 우리의 마음은 그 불을 머금는 심지와도 같다.

경험이 달라진 만큼, 색이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리의 이해 역시 달라졌다. 사실 인간의 뇌에서 색이 어떤 중요성과 역할을 지니는지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변화하고 있으며, 여전히 논쟁적이고, 때로는 과학계와 기존 통념을 비껴가는 놀라운 결과를 내놓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인간의 광수용체는 가시광선 스펙트럼 가운데 우리가 녹색으로 인식하는 영역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실제로는 녹색 사물보다 레드나 옐로우, 블루 계열의 사물을 더 잘 기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우리의 뇌가 본능적으로 자신이 초록빛 환경 속에서 살아갈 것이라 기대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가설로 설명된다. 신경과학자들은 또한 우리가 모두 같은 방식으로 색을 보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대해서도 최근 해답을 찾았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참가자들이 여러 색을 바라보는 동안 촬영한 뇌 스캔에서는 색에 대한 보편적인 신경 부호 체계가 관찰되었다.

색에 대한 연구 중 공감각(synaesthesia) 연구는 흥미롭다. 전 세계 인구의 5퍼센트에 조금 못 미치는 이들이 이 현상을 경험하는데, 흔히 감각들이 서로 짝을 이루거나 뒤섞이는 상태로 설명되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복합적이다. 어떤 공감각자는 문자나 소리를 특정한 색으로 느끼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들은 감각과 무관한 현상 사이에서 연결을 경험한다. 그럼에도 색은 공감각이 가장 자주 드러나는 방식이다. 어떤 이들은 숫자와 맛, 소리, 심지어 한 해의 달들까지도 각각의 색과 연결해 느낀다. 색의 경험은 대개 감정적 반응도 더 강하게 불러일으킨다. 공감각을 경험하는 사람에게 빨간색은 대부분 단순한 빨간색이 아니며, 광택이 나는 갈색이 장밋빛으로 변하면서 가장자리가 진주 빛으로 반짝인다고 묘사하기도 한다. 글자를 볼 때 선명한 색조를 경험하는 문자-색 공감각자인 러시아계 미국인 소설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Vladimir Nabokov)는 알파벳 전체를 이렇게 세밀하게 묘사했다. “덜 익은 사과 같은 p, 피스타치오빛 t. 보랏빛이 어딘가 섞인 칙칙한 그린, 그것이 w를 설명할 수 있는 최선이다.” 이처럼 예민한 감각을 지닌 이들은 그 수에 비해 훨씬 더 깊은 영향을 예술과 디자인, 문학에 남겨왔을지 모른다.

Moses Harris, 자연 색채 체계, c. 1776

이 설명은 색과 신경과학을 둘러싼 다른 현상들의 중심에도 놓여 있을 수 있다. 어느 정도의 감각 간 교차는 사실 우리 모두에게 존재한다는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 실험 심리학자이자 옥스퍼드 대학의 교차 감각 연구 책임자인 찰스 스펜스(Charles Spence)는 코코아를 오렌지색 컵에 제공하면 흰색이나 빨간색 컵에 제공할 때보다 참가자들이 더 맛있게 평가하는 것을 확인했다. 분홍색 컵에 담긴 음료는 더 달게 느껴지고 파란색 컵 속의 음료는 갈증을 더 해소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1970년대에 비슷한 증거가 등장하기 시작해, 대부분의 사람이 흰색을 짠맛과 연관시키고 빨강과 분홍을 단맛, 검정을 쓴맛, 노랑과 초록을 신맛과 연관시키는 것으로 드러났다.

마찬가지로 과학자들은 우리가 특정한 특성을 본능적으로 더 매력적으로 느끼도록 되어 있으며, 이는 그 특성을 지닌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물리적인 사물을 두고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밝은 색일수록 더 부드럽고 편안할 것이라 판단되는 경향이 있다. 다만 이러한 연결 가운데 얼마나 많은 부분이 사회적 학습과 문화적 기대에서 비롯된 것인지, 또 얼마나 많은 부분이 색에 대한 본능적 감각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여전히 분명하지 않다. 예를 들어, 요즘은 여전히 많은 사람이 핑크색을 여성성과 연관 짓고 파란색을 남성성과 연관시키지만, 1920년대 이전에는 정반대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런 연관성이 생물학적인 특징인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중요한 점은 이런 연관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행동과 선호를 분석하는 AI 대규모 언어 모델을 활용하는 연구자들은 앞으로 또 어떤 패턴을 발견하게 될까. 오래전부터 짐작되어 온 사실, 어떤 색은 사람을 유혹하고 또 어떤 색은 자극한다는 더 분명한 증거가 드러날지도 모른다.

만약 그런 공식이 만들어진다면, 그 정보는 어떻게 활용될까. 이미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는 게시물을 만드는 데 능숙한 콘텐츠 제작자들이 인간의 뇌가 본능적으로 즐겁고 두렵고 흥미롭고 맛있다고 느끼는 색 조합까지 알게 된다면, 그 영향력은 얼마나 더 커질까. 우리는 스모키 아이와 스칼렛 립, 물기 어린 피부가 지닌 고유한 아름다움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될지도 모른다. 혹은 특정한 색조와 질감이 피부의 언더톤이나 헤어 컬러와 어떻게 어우러지는지에 대해 더 정교한 시각을 갖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우리가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과 자연스럽게 끌리는 색을 극적으로 바꾸어 놓을지 모른다.

미래의 색

오늘날 색은 현실과 가상 세계를 가리지 않고 같은 강도로 스며든다. 지난 한 세대 동안 스크린과 영상, 사진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이전보다 훨씬 더 대담하고 밝고 채도 높은 색을 구현해냈다. 이전 어느 때보다 높은 해상도를 제공하는 HDTV는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며 빠르게 보급되었다. 더 높은 채도와 대비를 구현하는 OLED 스크린은 새천년이 시작된 이후 본격적으로 확산되었고, 전자책 리더기에 사용되는 E Ink 기술 역시 최근에는 풀 컬러 버전으로 등장했다.

스크린이 더 풍부한 색을 품게 되면서 앱 디자인 또한 눈에 띄게 진화했다. 우리는 점점 더 과열되는 주의력 경제 속에서 시선을 붙잡기 위해 설계되고 큐레이션된 이미지와 영상들을 끊임없이 스크롤한다. 이때 핵심이 되는 것이 바로 색이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콘텐츠 제작자에게는 우리의 시선을 붙들 시간이 몇 초밖에 없다. 엄청난 양의 이미지가 끊임없이 쏟아지는 현실은 그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지만, 동시에 색에 대한 우리의 매혹은 그들에게 강력한 무기가 된다. 눈길을 사로잡는 조합, 채도로 가득 찬 공간, 황금빛 시간대의 빛이 피부 위에 드리우는 감각 같은 것들 말이다.

진화하는 기술이 이전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우리 생활에 영향을 주는 반면, 색의 물질적인 경계가 확장되어 과학자들은 새로운 안료와 더 매끈한 매질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오리건 주립대학교의 과학자 마스 서브라마니안(Mas Subramanian)은 200년 만에 처음으로 새로운 파란색인 YInMn을 2009년에 만들어낸 팀을 이끌었으며, 지금도 빛에 색이 바래지 않고 안정적이며 독성이 없는 빨간색 안료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그리고 구조적인 색을 연구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이 연구는 빛과 상호작용하고 굴절시켜 색을 만들어내는 아주 작은 구조, 즉 미세하거나 나노 크기의 구조에 의존하는데, 자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색이다. 공작 깃털의 기름막 같은 틸, 미나리아재비의 발광감, 블루 모르포 나비 날개의 선명한 하늘빛을 떠올리면 된다. 모두 구조색에 의존한다. 이런 구조를 모방해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된다면, 언젠가는 그것이 아이섀도 팔레트에 담기거나 자동차 표면에 입혀져 우리 주변의 세계에 또 다른 차원의 색을 더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거의 무한한 선택지가 주어진 듯 보이지만, 여전히 수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벽은 유해한 냄새를 내지 않으면서 칠해져야 하고, 립스틱은 끈적임 없이 부드럽게 발려야 하며, 직물은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는 방식으로 염색되어야 한다. 소재와 화학 물질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불순물을 포함하기도 하고, 빛과 열에 노출되면 바래기도 하며, 독성이 강하면 사용이 제한되기도 한다. 종이에 쓰이는 착색제가 자동차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 또 벨벳이나 실크처럼 빛을 반사하는 소재가 있기는 하지만, 직물은 편안함과 착용감을 유지하면서 완전히 반사적인 표면이 되기는 어렵다.

Michel Eugène Chevreul, 72등분 색상환, 1861

하지만 디지털 세계에서는 이런 제약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원한다면 아바타의 블러셔를 크롬처럼 반사적으로 만들고, 아말피 레몬 껍질을 닮은 색으로 구현하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현실 세계에서는 어떤 재배사도 완전히 푸른 장미를 길러내지 못했기에 블루 로즈는 오래도록 불가능의 상징이었지만, 디지털 정원에서는 세룰리안부터 네이비에 이르기까지 모든 블루의 장미를 얼마든지 ‘재배’할 수 있다.

기술은 문화 공간에서도 색채 경험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킨다. 미술 복원 산업에서 기관들은 비밀스럽게 처리하던 보존 관행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렘브란트(Rembrandt)의 1642년 걸작인 야경(The Night Watch)은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의 갤러리에서 디지털 이미지, 화학 분석, AI를 이용해 그림과 안료의 노화 과정을 연구한 결과를 기반으로 현재 수작업으로 실시간 복원 중으로, 2019년에 시작되어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한편, 덜 침습적인 복원 방법을 선택하는 기관들도 있다. 2014년 하버드 미술관은 특수 조명을 캔버스에 투사해 수십 년 간의 흠집과 빛으로 인한 심각한 손상을 제거해, 색과 톤의 거장이었던 마크 로스코(Mark Rothko)가 1960년대에 처음 구상했던 상태를 되살린 것이다.

기술은 인간의 눈이 빛으로 인식할 수 있는 전자기 스펙트럼의 범위 자체를 넓힐 가능성까지 보여준다. 2025년 4월, UC 버클리와 워싱턴대학교의 과학자들은 특정한 망막 세포에 레이저를 쏘아, 지금껏 인간이 본 적 없는 색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피험자들이 목격한 것은 블루와 그린 사이의 색조였고, 연구진은 이를 ‘올로’라고 불렀다. 그 색은 피험자들이 이전에 본 어떤 색보다도 훨씬 더 강한 채도를 지닌 것으로 전해졌다. 이 연구는 원추세포를 자극할 때, 지금까지 상상하지 못했던 다른 색들 역시 만들어질 가능성을 남겨 둔다.

만약 지금이 깊은 유동과 변화의 순간이라면,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거의 끊임없이 색의 홍수 속에 놓인 탓에, 어떤 이들은 벌써 피로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우리는 앞으로 색을 더 절제하고, 더 의식적이며, 더 예술적으로 사용하게 될지도 모른다. 트렌드 컨설턴트이자 팬톤 컬러 인스티튜트 멤버인 제인 보디(Jane Boddy)는 “빠르고 때로는 벅차게 느껴지는 세상에서 색은 감정적 필요를 채우는 방식으로 쓰일 수 있으며, 차분함과 회복력, 기쁨의 순간을 선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뒤 프레 드 생 모르 역시 이 감각에 공감하면서도, 색이 지닌 영감의 힘을 다시 강조한다. “나의 영감은 시선이 머무는 곳에서 온다. 그것은 한 점의 그림일 수도 있고, 길거리의 소년이나 소녀가 한 메이크업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왜 그것이 나의 시선을 붙잡는가이다.” 나 역시 여기에 동의한다. 색은 분명한 힘을 지닌다. 무엇이 누군가의 시선을 사로잡는가는 신경과학이나 기술에 의해 설명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쉽게, 어쩌면 더 본질적으로, 그것은 개인적인 것, 감정적인 것, 오직 색만이 지닌 설명하기 어려운 마법에 관한 일일지도 모른다.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마주한 수많은 색 가운데, 결국 내 머리와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고재의 작품이 지닌 그 날것 그대로의 라피스 블루였다.